합리적인 것을 하고자 하는 유혹 by 푸른매

갈등으로서의 민주주의

 19세기에 들어와 윤리와 정치의 하나됨은 일부 현자들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막연하고 어려운 현상이 아니게 되었다. 정치행동이 과학적 발견과 맞아 떨어지면 언제나 가능한 일상적 체험이 된 것이다. 합리적 과학의 원칙과 그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행동준칙을 따르는 것이 이 시대 정치 및 윤리원칙의 제1명제가 되었다. 정치적 논쟁이 과학적 논쟁을 닮아갔다. 정치에서 일관성을 잃으면, 즉 합리적 원칙에서 벗어나면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정치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법은 곧 실질적인 윤리적 판단을 의미하게 되었다. 과학적으로 옳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건전한 해법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이 요구하는 그런 해법이었다, 도덕적으로 그른 사람이 정치적으로 옳을 수 없었다. 즉 동기와 행동의 일치와 일관성, 즉 사고 및 행동과 전후관계의 일치가 윤리, 과학, 그리고 정치에서 최고의 덕목이 되었다.
 정치적 갈등은 과학적 논쟁인 동시에 도덕적 적대관계가 되었고, 정적(政敵)은 또한 학문적 적인 동시에 도덕적 적이 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스스로와 남들에게, 자기 입장의 도덕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적의 도덕적 타락, 그리하여 그로 인해 처벌받아야 함을 동시에 입증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만큼은 자유주의자들이 다른 정치적 신념과 다른 점이 있다. 즉, 자신의 입장이 정당함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고, 정치에서 흔한 냉소주의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으며, 그 신념을 행동에 옮김에서 주저함이 없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약간의 돈키호테적 기질이 있다. 글래드스턴, 윌슨, 브리앙 등이 이와 같은 자유주의의 전형이다.

Morgenthau, Hans J., Scientific Man versus Power Politic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6
(김태현 역, 『과학적 인간과 권력정치』, 나남, 2010, p.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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