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by 푸른매

어차피 군 병력의 감축은 피할 길이 없다. 더이상 인구학적으로 60만의 대규모 병력을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징병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병제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징병제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인구 2억의 1973년 미국이 모병제로 굴린 지상군 전투병력은 13개 사단에 불과했다. 징병제를 유지하던 1968년의 19개 사단보다 6개 사단이 줄어든 규모다. 인구가 5000만 수준이고 그나마 세대 절벽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모병제로 전환했을 때 과연 전면지상전을 수행할 수 있는 병력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는 심각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인구가 한국의 절반 약간 못 미치는 타이완은 29만명의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2014년 2만 8천명의 모병이 필요했지만, 실제 충원율은 고작 30%에 불과했다. 한국군이 아무리 용을 써도 모병제로 전환하면 징병제를 유지할 때와 같은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주 잘해야 절반 정도의 병력을 유지할 수 있을텐데, 어차피 한국 육군 병력은 2020년까지 40만 이하로 줄어든다. 자, 그렇다면 한국군이 모병제로 전환했을 때 2020년에 굴릴 수 있는 지상전투병력은 얼마나 될까?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전면지상전의 위협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국가라면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처한 안보환경은 서울 40km 너머에 대규모 전면전 위협이 엄존하고 있는 지극히 냉전적인 환경이다. 이 상황에서 모병제를 유지하면서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언해도 좋다. 불가능하다. 현재 미 육군이 57만의 병력으로 10개 사단을 운용하는데, 한국 육군이 모병제로 전환했을 때 충원 가능한 병력 규모를 감안하면 미군 사단을 그 규모만큼 데려다 놔도 서울 북방에서 재래지상전 위협을 격퇴할 수 있을지 절대 장담할 수 없다.  물론 한국이 미국 정도의 돈을 각 사단에 쏟아부을 수 있을지는 차치하고서 말이다.

250km에 달하는 정면 그 자체도 문제지만, 치명적인 것은 서울이 휴전선 남쪽 40km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심이 40km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국 육군은 최소한 작전적 수준에서는 후퇴가 아예 불가능한 것이다. 2010년형 미 육군 중사단이 120km 정면에서 자유롭게 기동력을 활용하면서 전투를 벌이는 데 필요한 종심이 200km이다. 40km이 얼마나 짧은 종심인지 감이 오는가? 애초에 미군 수준의 기동력을 확보할 수도 없을뿐더러, 기동력을 활용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한국군이 인력 위주의 전력구조를 유지해 휴전선을 아예 꽁꽁 틀어막는 걸 선택한 것이다. 전선에 틈을 만들어 놨다간 단 한 번의 실수에 서울이 북한군 손에 들어갈 판이니까 말이다.

한국군이 처한 극단적인 안보 환경이 징병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데, 단순히 "소수정예화"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것이야말로 극도로 나이브한 기술만능주의가 아닐까. 차라리 서울을 통째로 들어내서 남쪽으로 옮기겠다는 구상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덧글

  • 네비아찌 2015/05/14 19:01 # 답글

    6.25 휴전 후에 수도를 서울로 환도한 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서울은 통일후의 수도라는 상징성만 부여하고 실제 행정수도는 부산에 그대로 두었어야 했는데...
  • BigTrain 2015/05/18 11:09 #

    박통도 생전에 그런 말을 자주 했었다고 하죠. 서울로 리턴하는 게 아니라 대전 쯤에서 머물렀어야 됐다고. 그래서 집권 후반기엔 대전 쪽으로의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할 생각이 있었다고도 하는데, 지금 굴러가는 걸 보면 1970년대도 이미 늦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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