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감상 by 푸른매


 보르자는 플롯을 대단히 정교하게 다루는 작가입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조형하거나 먹힐만한 상황을 연출한다거나 하는, '라이트노벨 작가'적인 능력은 없지만 플롯을 운용하는 능력이 다른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유형이죠. 전작인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에서 보여준 플롯 구성능력은 감탄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메멘토 모리』는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에 미치지 못하더군요.

 네, 『메멘토 모리』는 나쁜 소설은 아닙니다. 중간 이상은 가죠. 제 취향을 따지자면 좋은 소설이라고 해줄 수도 있고요. 8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옛 소꿉친구들에 얽힌 괴담을 추적하며 사건에 말려들어가는 전개는 현실적이고, 긴장을 유발하며, 흡입력도 있어요. 사건들의 배열도 논리적이고 정교합니다. 저도 마지막 150페이지 전까진 대체 이 이야기의 진상은 무엇인가를 궁금해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으니까요. 그 마지막 150페이지가 문제였지만요.

 『메멘토 모리』의 문제점은 명백합니다. 김미영 팀장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존재죠.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쌓이고 쌓인 의문들, 그리고 주인공에게 닥친 결정적인 위기가 김미영 팀장의 등장 단 하나로 해결됩니다. 극중 내내 조언자의 위치에 있던 김미영 팀장이 막판에 튀어나와서 모든 상황을 종결시키고 결론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데, 솔직히 세련된 방식은 아니죠. 그렇잖아요? 김미영 팀장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개입할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을뿐더러, 여기서 주인공이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건 셔틀일 뿐이죠. 추리는 김미영 팀장이 전부 다 하거든요. 전해들은 사정만 가지고 진상을 줄줄이 꿰어맞추는데, 이걸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미영 팀장이 작중에서 주인공에게 "대체 이 스토리를 어떻게 수습할 거냐"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이건 작가 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예상 이상으로 정교하고 복잡해진 서사를 수습할 길이 없어 보이니 그냥 던진 거죠. 수습은 결국 김미영 팀장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다 하고요.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에서도 이와 유사한 핵심 인물은 있지만 이 경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비중을 지니면서 능동적으로 활약하고, 동시에 모든 계획을 주도하면서 막판에 진상을 보여줬죠. 김미영 팀장처럼 갑작스레 등장해서 모든 미스터리와 위기를 폭파시켜버리는 미스버스터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개인적인 아쉬움이 하나 더 있다면,『메멘토 모리』가 시종일관 진지하다는 겁니다. 농담이 보이지 않아요.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에서 보여준 유머가 워낙 괜찮아서 안타깝긴 합니다. 물론 서사 자체가 충분히 긴장감을 유지시켜 주기 때문에 굳이 농담을 던질 필요가 없기는 해요. 농담이 긴장을 해칠 수도 있고요. 그래도 빵 터지는 농담은 정교한 플롯 구성 다음 가는 보르자의 강점이니, 관심 가시는 분은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를 보시면 될 겁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보르자의 팬이시라면 추천합니다. 전작에 비해 강점이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보르자는 괜찮은 글을 썼어요. 팬이 아니시라면 일단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를 보시고 자신이 이 작가를 좋아할 것 같은지 아닌지를 가늠하신 다음에 결정을 내리셔도 될 겁니다.


 끝내고 보니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홍보글 같군요. 후, 그짓말이 초판도 다 안 나갔다는 건 한국 라이트노벨 시장의 비극입니다. 다들 한 권씩 사서 보세요. 저는 『노벨 배틀러』나 보러 가야겠습니다.

덧글

  • 모튼 2014/08/29 21:26 # 답글

    그거짓보다는 떨어진다면 고민되네요. 쩝.
  • 푸른매 2014/08/30 14:37 #

    그짓말을 재미있게 보셨다면 읽으셔도 괜찮을 겁니다. 메멘토 모리도 좋은 소설이에요. 다만 더 잘할 수 있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죠.
  • ReSET 2014/08/30 17:17 # 답글

    올 ㅋ 블로그 재가동 하셨군요.

    역시 "유머센스의 삭제"는 모두들 안타까워 하는 것 같습니다.
  • 푸른매 2014/08/31 11:26 #

    한 주에 한 번씩은 포스팅을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그래봐야 저율운용이지만.

    그짓말에서 보여준 유머가 참 괜찮았으니까요. 전 박지성 드립에서 빵 터졌습니다. 선도부 콤비의 관료 개그도 배경이랑 맞물려서 부조리하게 웃긴 게 좋았고.
  • 2014/09/02 06: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9/02 19: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9/02 20: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허허허 2014/09/13 23:20 # 삭제 답글

    그짓말처럼 풍자하는 개그는 없었지만 여전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플롯의 짜임새는 죽지 않은 좋은 소설이었지요!

    개인적으로는 전 그짓말보다 재미있었습니다 ㅎㅎ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ㅎ
  • 2016/08/05 00: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3/07 20:5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2/28 11: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1/22 22: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1/26 20: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2/09 21:4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6/28 19: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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