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론: 민주승리론에 대한 비판 by 푸른매

내가 지어낸 논리라고?

데이비드 레이크가 통계적 방법으로 민주승리론을 주장하자 당연히 이에 대한 반박이 있었습니다. 주로 신현실주의적인 입장에서 많이 제기되었죠. 대표적인 학자가 존 미어샤이머의 수제자인 마이클 데시Michael C. Desch입니다. 데시는 International Security 27호 2권(2002년 가을)에 게제한 "Democracy and Victory: Why Regime Type Hardly Matters"에서 레이크가 제시한 통계적 방법론의 허점을 지적하고 민주승리론의 주요 논리에 대해서 반박합니다.

예를 들어서 민주승리론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지도자가 패전에 대해 재선 실패 등으로 쉽게 처벌될 수 있기 때문에 민주국가의 지도자들은 이길 수 있는 경우만을 신중하게 골라서 전쟁을 벌인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데시는 확률이 낮기는 해도 비민주적 국가의 지도자들도 처벌받을 수 있으며, 그 경우 처벌 수준이 선거 패배 정도에 불과한 민주국가에 비해 비민주국가는 투옥, 추방, 처형 등 처벌 강도가 높은 경우가 많기에 기대비용의 차원에서 민주국가의 지도자가 부담이 크다고(곧 더 신중할 유인이 높다고) 말할 수 없다고 비판합니다. 이 외에도 전쟁 승패에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지닌 변수는 오히려 지형이라는 통계적인 공격도 있고, 민주국가가 전쟁수행능력이 더 높다는 인과적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좀 바빠서 이 정도로 간단하게 소개하고 넘어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데시의 핵심 주장은 정치체제가 전쟁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키케로님도 말씀하셨듯 민주승리론은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데시의 주장에 동의하는 편이구요(제가 가장 좋아하는 IR 이론가가 케네스 월츠라는 점을 밝힐 필요가 있겠군요). 하지만 이런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민주승리론이 꽤 긴 세월 "사망선고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가치가 있지요. 취약한 이론이 그토록 오래 생존할 정도로 학술적 이론의 장은 만만하지 않고, 국제관계론도 예외는 아닙니다.

합리적인 것을 하고자 하는 유혹 by 푸른매

갈등으로서의 민주주의

 19세기에 들어와 윤리와 정치의 하나됨은 일부 현자들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막연하고 어려운 현상이 아니게 되었다. 정치행동이 과학적 발견과 맞아 떨어지면 언제나 가능한 일상적 체험이 된 것이다. 합리적 과학의 원칙과 그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행동준칙을 따르는 것이 이 시대 정치 및 윤리원칙의 제1명제가 되었다. 정치적 논쟁이 과학적 논쟁을 닮아갔다. 정치에서 일관성을 잃으면, 즉 합리적 원칙에서 벗어나면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정치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법은 곧 실질적인 윤리적 판단을 의미하게 되었다. 과학적으로 옳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건전한 해법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이 요구하는 그런 해법이었다, 도덕적으로 그른 사람이 정치적으로 옳을 수 없었다. 즉 동기와 행동의 일치와 일관성, 즉 사고 및 행동과 전후관계의 일치가 윤리, 과학, 그리고 정치에서 최고의 덕목이 되었다.
 정치적 갈등은 과학적 논쟁인 동시에 도덕적 적대관계가 되었고, 정적(政敵)은 또한 학문적 적인 동시에 도덕적 적이 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스스로와 남들에게, 자기 입장의 도덕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적의 도덕적 타락, 그리하여 그로 인해 처벌받아야 함을 동시에 입증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만큼은 자유주의자들이 다른 정치적 신념과 다른 점이 있다. 즉, 자신의 입장이 정당함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고, 정치에서 흔한 냉소주의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으며, 그 신념을 행동에 옮김에서 주저함이 없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약간의 돈키호테적 기질이 있다. 글래드스턴, 윌슨, 브리앙 등이 이와 같은 자유주의의 전형이다.

Morgenthau, Hans J., Scientific Man versus Power Politic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6
(김태현 역, 『과학적 인간과 권력정치』, 나남, 2010, p. 64)



단상 by 푸른매

어차피 군 병력의 감축은 피할 길이 없다. 더이상 인구학적으로 60만의 대규모 병력을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징병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병제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징병제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인구 2억의 1973년 미국이 모병제로 굴린 지상군 전투병력은 13개 사단에 불과했다. 징병제를 유지하던 1968년의 19개 사단보다 6개 사단이 줄어든 규모다. 인구가 5000만 수준이고 그나마 세대 절벽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모병제로 전환했을 때 과연 전면지상전을 수행할 수 있는 병력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는 심각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인구가 한국의 절반 약간 못 미치는 타이완은 29만명의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2014년 2만 8천명의 모병이 필요했지만, 실제 충원율은 고작 30%에 불과했다. 한국군이 아무리 용을 써도 모병제로 전환하면 징병제를 유지할 때와 같은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주 잘해야 절반 정도의 병력을 유지할 수 있을텐데, 어차피 한국 육군 병력은 2020년까지 40만 이하로 줄어든다. 자, 그렇다면 한국군이 모병제로 전환했을 때 2020년에 굴릴 수 있는 지상전투병력은 얼마나 될까?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전면지상전의 위협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국가라면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처한 안보환경은 서울 40km 너머에 대규모 전면전 위협이 엄존하고 있는 지극히 냉전적인 환경이다. 이 상황에서 모병제를 유지하면서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언해도 좋다. 불가능하다. 현재 미 육군이 57만의 병력으로 10개 사단을 운용하는데, 한국 육군이 모병제로 전환했을 때 충원 가능한 병력 규모를 감안하면 미군 사단을 그 규모만큼 데려다 놔도 서울 북방에서 재래지상전 위협을 격퇴할 수 있을지 절대 장담할 수 없다.  물론 한국이 미국 정도의 돈을 각 사단에 쏟아부을 수 있을지는 차치하고서 말이다.

250km에 달하는 정면 그 자체도 문제지만, 치명적인 것은 서울이 휴전선 남쪽 40km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심이 40km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국 육군은 최소한 작전적 수준에서는 후퇴가 아예 불가능한 것이다. 2010년형 미 육군 중사단이 120km 정면에서 자유롭게 기동력을 활용하면서 전투를 벌이는 데 필요한 종심이 200km이다. 40km이 얼마나 짧은 종심인지 감이 오는가? 애초에 미군 수준의 기동력을 확보할 수도 없을뿐더러, 기동력을 활용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한국군이 인력 위주의 전력구조를 유지해 휴전선을 아예 꽁꽁 틀어막는 걸 선택한 것이다. 전선에 틈을 만들어 놨다간 단 한 번의 실수에 서울이 북한군 손에 들어갈 판이니까 말이다.

한국군이 처한 극단적인 안보 환경이 징병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데, 단순히 "소수정예화"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것이야말로 극도로 나이브한 기술만능주의가 아닐까. 차라리 서울을 통째로 들어내서 남쪽으로 옮기겠다는 구상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전략적 위협: 민주주의 by 푸른매


The West’s final tool for peeling Kiev away from Moscow has been its efforts to spread Western values and promote democracy in Ukraine and other post-Soviet states, a plan that often entails funding pro-Western individuals and organizations. 

Mearsheimer, John J. "Why the Ukraine Crisis Is the West’s Fault: The Liberal Delusions That Provoked Putin"Foreign Affairs , August 20, 2014

 존 미어샤이머가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가 한창 진행중이던 8월에 포린 어페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전체적인 논지는 "NATO와 EU의 팽창이 러시아에 가한 심대한 전략적 위협이 크림 반도 위기와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의 핵심 원인"이며, 따라서 "유럽에서 realpolitik는 자취를 감췄다"는 자유주의적 견해는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신현실주의자로서 당연한 반응이고,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만 "서방의 가치를 전파"하고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것만으로도 "러시아에게 위협"이 된다면 전 여전히 심정적으로 러시아라는 국가를 혐오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것이 전략적으로 옳은가의 여부는 별개로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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